뱃 속의 아이들을 건강히 지켜내느라 한 달 넘게 침대에 누워있느라, 홈스쿨이 아닌 홈스테이로 지낸 생활들...... 사실 더 좋았던 거 같다. ^^
영린인 언제까지 방학이냐고 계속 묻고 있다. 이번 주까지만 좀 여유있게 보내고 다음 주부터는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데, 이전과 양상이 많이 달라질 듯 하다.
나에겐 너무도 감사의 시간이었고, 누림의 시간이었다. 많은 할 얘기가 있으나, 홈스쿨 블로그인만큼 홈스쿨과 관련된 이야기들만 몇 가지 정리해보려한다.
감사한 일들.
1. 엄마는 해주는 거 없이 누워있기만 하는데, 애들은 더 기쁨에 넘쳐나는 거야......
유산을 해본 사람에게는 아이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게 와 닿는지 모른다(금새 망각해서 탈이지만 말이다.ㅠㅠ). 이는 비단 내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집의 아이도 예사로 보이지 않게 된다. 유산의 경험이 두 번 있는 내가 또 뱃 속에 자칫하면 잃을 수 있는 생명 둘을 품고 누워있는 내가 우리 영린이와 한송를 어떤 눈 빛으로 봐라보았을 지......, 아이들에게 건네는 내 말이 억양, 어투뿐만 아니라 어떤 말을 건넸을지......
가난해진 마음으로 영린이와 한송이가 이렇게 나의 아이들로 맡겨진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이고, 감사한 일인지 너무 감사하고 감사해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곤 하였다.
집안은 쑥대밭이고 무슨 국밥집도 아니고 반찬 없이 달랑 국 한 그릇에 밥 말아먹는 일이 다반사였던 상황은 영 아니였는데, 아이들의 신나하고 기뻐하는 웃음이 가득한 날들 나도 남편도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날들이었다.
2. 더 철든 영린, 형아를 더 좋아하고 따르게된 한송
몸이 너무 아니여서 누워있는데, 윤한송 와서 안아달라고 보챈다(원래 보채는 일이 없는 녀석인데..). 겨우 일어나 앉아서 품에 안으며, "한송아 엄마가 얼른 건강해져서 우리 한송이 많이 안아줘야하는데, 지금은 어려워..."하고 있는데, 거실에서 이 말을 들은 윤영린 달려와 하는 말 "엄마, 걱정 마세요. 제가 한송이 잘 돌볼 수 있어요." 하며 한송이 달래서 놀아준다. 언제 저렇게 큰 건지...... 처음엔 너무 일찍 철 드는 거 같아 안쓰런 맘도 있었는데, 감사로 올려드리니 아이들을 직접 키우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다.
형이 개발해낸 여러 창의적인 놀이로 윤한송 깨어있는 내내 신나게 웃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의견충돌에 싸움도 있었지만, 엄마의 중재 없이 알아서들 조율해가며.....
영린이나, 한송이 하나만 있었으면 내가 그렇게 누워지내지 못했을 것 같다.
3. 엄마나 아내로 미안함이 아닌 존중감을 느끼게 해준 시간들......
아무것도 할 수도 해줄 수도 없는 아내, 엄마로 누워지내는 시간
엄마가 뭘 해줘서 엄마가 좋고 필요한 게 아니라, 엄마가 이렇게 누워만 있어도 지들 곁에 엄마라는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영린이와 한송이보면서, 내가 엄마라는 역할로 이 가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의 엄마로 있는 것임을 아이들은 온몸으로 확인시켜주었다.
어렵고 서툴고 부담스런 집안일을 전담하며(그냥 곁에서 많이 돕는 것과 전담하는 것은 차원이 틀리다) 기쁨으로 감사함에 잠겨있는 남편을 보며, 난 단지 살림을 하는 가정부, 애 키우는 보모가 아니라 아내이고 엄마인 것을 깊이 느꼈다. 남편이 그랬다. "밥 차려놓으면 먹어줄 아내가 있어서 넘 감사하고 기쁘다고..." 지금도 눈물이 난다.
4. 심심해했지만 결코 심심하지 않게 보낸 윤영린
그나마 한송이가 깨어있는 시간은 좀 낫지만 한송이와 엄마 모두 잠들어버린 시간들, 그렇지 않아도 책 좋아하는 녀석이긴 했는데, 시공주니어 네버랜드 클래식 시리지 나니아 나라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혼자 읽어대기 시작하다. 나도 한 번 앉은 자리에서 200, 300 페이지 되는 책 읽어내는 거 버거워하는데... 원래 내가 한 번 읽어주었던 책은 혼자 그렇게 읽기도 했는데, 처음 대하는 책을 혼자 읽기 시작한 거......
얼마나 심심했으면......
피아노 치는 것에 맛들기 시작했다. 이것도 순전히 심심해서 치다가 재미가 든 거 같다. ^^;
배우는 책 처음부터 가르쳐주지도 않은 부분까지 악보 보고 앉아서 족히 30, 40분은 치기 시작한 거......
처음엔 잘 안되는 듯 하다가도 계속 치면 쉬워지고 하는 것에 성취감도 느끼고 하는 것이 재미 있었나 보다. 음악을 즐기고 누렸으면 했는데, 넘 크게 얻은 성과.. 감사하다.
자연에 더 관심 갖고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집은 산 바로 밑... 아침에 새 소리로, 밤에도 새 소리 들리고, 지금은 연초록으로 뒤덥인 산이 창문 열면 바로 코앞..
여러 다른 산새 소리 흉내도 내고, 어느 날은 보니 어떤 새 울음소리인지 궁금하다며 망원경 들고 와 창문 으로 산쪽 보며 어떤 새의 소리인지 찾고 있더라.
오늘은 갑자기 종이와 색연필 집어 들더니,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 보며 일명 풍경화를 그렸다.
"엄마, 이건 환한 빛을 표현한 거예요" 하며 노란색으로 칠한 부분을 가리킨다. 그러면서 "엄마, 모네아저씨처럼 잘 그리죠?" 한다. 난 "그러네.."라고 답하는 고슴도치 엄마.
영린이가 항상 심심함을 이렇게 좋은 에너지쪽으로 발산하는 것은 아니였다. 바로 코 앞 산에 유치원 아이들이 소풍이라도 온 날이면 창문 너머로 부러운 듯 쳐다보며 나도 유치원 다니고 싶다고 하기도 하고, 그러면 엄마는 차마 말은 못하고, 몸도 안 따라주면서 홈스쿨한다고 애만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속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냥 내가 나한테 그랬다. 영린이 심심해도 된다고, 이때 아니면 언제 심심해보겠냐고...... 그리고 영린이가 너무 심심하다고 어떻게 하죠? 하면 난 여유있게 웃으며 많이 심심하구나? 반문해주는 여유까지 생겼다. 영린이도 엄마의 대답과 반응에서 느꼈을 것이다. 심심한 것이 그렇게 슬퍼만할 일도 아니고 속상해할 일만도 아니라는 것을......
너무 길어져 나머지 이야기들은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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